황수주 광주북구청소년상담복지·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장 촘촘한 돌봄이 먼저다 학교 밖에도 길은 있다
입력 : 2025. 12.22(월) 18:30
"평범하게만 살고 싶었어요."
현장에서 만나는 학교 밖 청소년들이 가장 자주 꺼내는 말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때로는 너무 잔인하게 들린다.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끝내 허락되지 않은 삶이었기 때문이다.
은서의 삶 역시 그러했다. 어린 시절 베트남에서 오신 어머니를 잃은 뒤 은서는 아버지와 오빠, 새어머니와 함께 살아갔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가정이었지만, 그 안에서 은서는 늘 한 걸음 비켜선 존재였다. 관심과 사랑은 오빠에게만 향했고, 그는 집 안에서조차 소외감을 느끼며 성장했다. 은서처럼 한부모 가정 이후 재구성된 가족 안에서 많은 아이들이 겪는 '조용한 외로움'이었다.
중학교 시절 겪은 성폭력 피해는 그의 삶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렸다. 피해 사실은 소문이 되었고, 영상이 퍼졌다. 용기를 내 학교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작은 지역사회에서 가해자 집안의 '체면'이 우선이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딸 관리를 잘하는 게 좋겠다"는 경찰의 무책임한 발언은 한 아이에게 "너는 보호받을 가치가 없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날 이후 집도, 학교도 더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결국 은서는 가출을 선택했고, 학교도 그만두었다. 친구들과 길 위를 떠돌며 끼니를 거르고 잠자리를 전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보다 친구들이 더 좋았던 그때, 그 시간만큼은 덜 외로웠다고 한다. 그러나 방황의 끝에서 은서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지 않을까." 그 질문이 삶을 다시 붙잡는 계기가 되었다.
18살, 늦은 나이에 은서는 홀로 중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해 합격했다.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았지만, 그 성취는 자신을 향한 첫 신뢰가 되었다. 이후 공장에서 일하며 '평범한 삶'을 꿈꾸었고, 의지할 남자친구도 생겼다. 그러나 남친과 헤어진 이후 극심한 우울증과 자해로 힘들었을 때 고열로 병원에 가게 됐다. 임신 7개월이었다. 살이 찌지 않아 전혀 임신을 알 수 없었다.
준비되지 않은 임신, 미혼모라는 낙인, 아이가 위험해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에 은서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청소년 부모, 법적으로는 보호 대상이지만, 현실에서는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다. 가족의 지지도, 도움받을 곳의 정보도 없이 홀로 출산과 양육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행히 은서는 미혼모 지원기관의 도움으로 아이를 지킬 수 있었고, 그렇게 은서는 '청소년'이자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안고 은서는 다시 다짐했다.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겠다". 가족센터의 연계로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를 알게 되었고, 고등학교 검정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아이의 잦은 고열과 입원으로 수업에 자주 참여하지 못해 지난 4월 1차 검정고시는 부분 과목 합격에 만족해야 했다. 포기할까도 싶었지만, 선생님들의 응원에 다음 시험준비를 아이가 잠을 자는 저녁에 졸음을 참아가면서 인터넷 강의로 시험준비를 했다.
8월 2차 검정고시 시험 당일. 아이를 아는 언니에게 맡기고 시험장을 가려는 데 또다시 아이의 열이 40도. 어린아이를 키우는 언니에게 아이를 맡길 수가 없어서 시험장이 아닌 병원으로 향했다. 은서는 또다시 좌절했다. 하지만 병실에서 웃는 아이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로 살고 싶다고. 은서는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면 간호조무사 자격증과 네일아트 자격증에 도전하고 싶다고 한다.
청소년 부모, 책임감이 부족했을까? 그러나 이들은 누구보다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어른의 몫까지 감당해야 했을 뿐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촘촘한 돌봄과 실질적인 제도적 지원이다. 학습권 보장, 양육 지원, 주거와 의료 연계, 그리고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다.
학교 밖 청소년은 '학교를 떠난 아이'가 아니라, '다른 조건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청소년'이다. 청소년 부모 역시 '문제의 결과'가 아니라, 지원이 부족했던 사회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은서 는 말한다. "언젠가 아이가 더 성장하면, 자신처럼 기댈 곳 없는 청소년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아직 정해진 건 하나도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나의 꿈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학교 밖에도 길은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길을 더 넓히고, 더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청소년의 삶은 한 번의 선택이나 실패로 규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학교 밖에서, 엄마가 된 한 청소년은 삶을 다시 배우고 있다.